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궁정 음악가로서,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이자 잘츠부르크 대주교 악단의 부악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그보다 5살이 많은 누이와 그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고,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누나가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고 놀라운 속도로 연주법을 익혔으며, 5살 때에는 이미 작곡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작곡한 그의 작품에서는, 피아노는 물론이고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돋보였으며 천재성과 함께 끊임없이 노력하며 성숙한 연주자로 성장했습니다.
1762년 6살 때부터 모차르트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아버지와 함께 오스트리아 빈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를 오가며 연주 여행을 다니기 시작합니다.
어린 나이에 그는 귀족들과 왕족 앞에서 화려한 연주를 선보이며 유럽을 순회하는 동안, 신동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유명 음악가들과 교류하고 음악에 대한 지식을 넓혔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키며 꾸준히 작곡을 했습니다.
1764년 모차르트는 겨우 8살에 첫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런던에서 크리스티안 바흐(바흐의 아들)에게 작곡을 배우면서 바흐의 복잡하고 정교한 음악 구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769년 12월부터 1771년 3월까지 모차르트는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를 활발히 왕래하며 기악과 성악을 접했고 이탈리아 음악의 다양한 형식을 배우고 흡수하여, 오페라를 작곡하고 초연하는 등 그의 음악세계를 확장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오케스트라를 활용하여, 서곡에서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미리 파악하고 작품 몰입도를 높일 수 있도록 섬세하고도 풍부한 화성을 사용했으며, 주인공이 극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특유의 아름다운 성악 선율로 표현하는 아리아를 선보이며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1770년 모차르트가 작곡한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는 일반적인 오페라 형식을 갖춘 그의 작품 중 첫 번째로 무대에 올려진 오페라입니다.
1777년에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었는데, 그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존중하지 않고 하인 부리듯 하는 대주교의 태도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창작의 자유도 없었거니와 봉급도 낮았고 모차르트에게 잘츠부르크에만 머물러 있기를 강요하며 활동을 제약했습니다.
모차르트가 22살 되던 1778년에는, 안타깝게도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큰 슬픔에 잠깁니다.
결국 1781년 더 큰 무대에서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펼치고 싶어 했던 모차르트는 대주교와의 심각한 갈등 끝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빈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빈에 정착하던 중 1782년부터 1785년까지, 그는 음악을 통해 영감을 주고받던 하이든의 현악 4중주를 접하고 자신만의 현악 4중주 작곡에 본격적으로 몰두하여, 6곡의 현악 4중주를 작곡했습니다.
그 사이 모차르트는 1782년 8월 4일에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도 했습니다.
모차르트는 1786년 <피가로의 결혼>, 1787년 <돈 조반니>, 1790년 <코지 판 투테> 등의 오페라를 작곡하여 음악적 전성기를 맞은 반면,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고 그를 헌신적으로 교육하여서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워낸 아버지가 1787년 5월 28일 별세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그러던 1791년 어느 여름날, 발제크 백작이 모차르트에게 진혼 미사곡 작곡을 은밀하게 의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이용하려고 비도덕적인 의도로 접근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진혼 미사곡 작곡을 의뢰받은 모차르트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것 같은 심정으로 작곡에 임한 탓인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해져, 1791년 늦가을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1791년 12월 5일 모차르트는 <진혼 미사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당시의 기록상으로는 ‘급성 고열과 발진을 동반한 감기’로 인해, 35세 나이로 짧은 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편, 죽음을 예감했던 모차르트는 생전에, 제자 쥐스마이어에게 직접 <진혼 미사곡>에 대한 자신의 의도나 악보에 대해 "이 부분은 이런 느낌으로 연주해야 해."라든가 "이 화음은 이렇게 연결되는 거야."라고 직접 말로 설명함으로써 작품을 완성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모차르트의 사후, 쥐스마이어는 그가 남긴 악보와 구술을 바탕으로 <진혼 미사곡>을 완성하여 발제크에게 주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다양한 장르에서 방대하고 혁신적인 작품을 남겼는데, 미완성 작품이나 편곡된 작품 등을 어떻게 분류할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지 않아 정확한 작품 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론, 짧지만 강렬했던 모차르트의 생애 동안 남긴 그의 작품은 유명한 여러 편의 오페라, 41개의 교향곡, 다수의 현악 4 중주곡 등 600곡 내외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전에 모차르트는 음악에 대한 헌신으로 가득 찬 그의 인생을 "음악은 나의 인생 그 자체다."라고 했으며, "음악은 영혼의 언어다."라고 말하며 감정과 영혼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은 음악이 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모차르트의 음악은 아름답고 뛰어난 선율, 조화로운 화성, 그리고 섬세하고 깊은 표현력으로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사랑받았고 영화, 드라마, 광고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에 활용되어 친숙한 음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